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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이 모터가 독일 보쉬 제쳤소, 일본 덴소만 잡으면 세계 1위라오”

13일 찾은 부산 기장군 효성전기 연구실에서는 연구원들이 일본 덴소, 독일 보쉬가 만든 자동차 모터를 돋보기로 들여다보고 있었다. 정진근(68) 효성전기 회장은 “경쟁사 제품을 잘 분석해야 더 좋게 만들 수 있지 않겠나”라며 “하물며 경쟁사들이 내로라하는 글로벌 기업인데, 우리 같은 기업이 따라가려면 더욱 그래야 한다”고 했다. 그는 “우리가 처음 모터 만들 땐 다 일본 제품 베꼈다”고 말했다.

효성전기는 정 회장의 부친인 고(故) 정태옥 창업주가 1973년 설립했다. 완구나 헤어드라이어 같은 소형 가전에 들어가는 작은 모터를 생산하는 회사였다. 군 복무를 마치고 기아자동차에 입사했던 정 회장은 부친 권유로 1977년 사원으로 합류했다. 소형 모터만으로는 회사 성장이 어렵다고 판단한 정 회장 부자(父子)는 각종 전시회를 다니며 새로운 먹거리를 찾았고, 1980년부터 자동차 모터를 만들기 시작했다.

효성전기가 특히 주목한 것은 자동차 냉난방에 관여하는 블로어(blower) 모터였다. 당시 일본에서 전량 수입해오던 블로어 모터를 1986년 효성전기가 국내 최초로 생산하기 시작했다. 정 회장은 “우연한 기회에 1t 화물차에 들어가는 블로어 모터를 수주했는데, 뜯어보니 못 만들 물건은 아니더라”며 “블로어가 모든 차량에 들어가는 모터라 해서 이것만 잘 만들어도 밥 굶을 일은 없겠다 싶었다”고 했다.

블로어 모터는 효성전기에 단순 먹거리가 아니라 글로벌 기업으로 거듭나는 원동력이었다. 2021년 현재 세계 블로어 모터 시장에서 효성전기는 약 20% 점유율로 세계 2위다. 1위는 일본 덴소, 3위는 독일 보쉬다. 한국 중견기업이 내로라하는 글로벌 업체와 경쟁하는 것이다.

효성전기가 처음으로 해외 납품을 시작한 것은 1997년이었다. 미국 GM이 호주 자동차 업체 홀덴을 인수해 탄생한 GM홀덴이 일본 히타치와 모터 납품 협상을 진행하다 사이가 틀어지면서 효성전기에 기회가 생겼다. 당시 효성전기는 GM홀덴 차량에 맞는 블로어 모터를 생산할 기술력이 없었다. 하지만 정 회장은 미국으로 날아가 모터 설계를 사왔고 이를 바탕으로 시제품을 생산해 납품 계약을 따냈다.

이후 효성전기는 미국 시장을 거쳐 2000년대 후반에는 유럽 시장 공략에도 성공했다. GM·포드·크라이슬러 등 해외 유명 브랜드 차량에도 효성전기의 모터가 들어간다. 정 회장은 “3년 이상 연구해 경쟁사보다 모터에 들어가는 부품 수를 절반 가까이 줄였고, 엔지니어들을 현지에 파견해 고객 업체들이 불만을 제기할 때마다 바로바로 응대한 게 비결이었다”고 말했다. 지금은 중국·인도·미국 등 10곳에 해외 공장과 사무소를 두고 있다. 매출도 2000년 236억원에서 올해는 3800억원으로 늘었다. 2025년에는 1조원 이상을 목표로 한다.

정 회장은 “중소기업이 해외에 진출하려면 겁이 없어야 한다”고 했다. 그는 “한때는 글로벌 기업들과 경쟁이 되겠냐는 패배주의에 빠지기도 했지만 덴소든 보쉬든 블로어 모터는 기껏해야 생산라인 한두 개, 책임자도 부장급 정도겠지 생각하니 힘이 나더라”며 “회장인 내가 부장급에 져서야 되겠느냐”고 했다.

이기우기자